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스트리아계 미국인 (문단 편집) == 이민사 == 북대서양 등 바다를 접한 [[독일|북쪽의 같은 말 쓰는 이웃집 나라]]에 비해 전체적으로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지형이었고, 과거 [[오스트리아 제국]] 및 그 후신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에서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은 절대 [[갑]]에 해당하는 위치였기 때문에 제국 내 다른 민족들에 비해 이민이 적은 편이었다. 비교하자면 북쪽의 [[프로이센 왕국]]의 경우 역시 [[독일인]]들이 갑이긴 했지만 인구가 워낙 빨리 증가하는 바람에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빈곤 문제가 심각하였고 특히 전역한 장교들이 연금이 제대로 안 나와서 배를 골골거리다 [[미국]], [[캐나다]], [[브라질]], [[아르헨티나]], [[칠레]], [[멕시코]] 등지로 이민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면, 오스트리아의 경우 인구 급증으로 인한 빈곤 문제도 적었을 뿐더러 전역한 군인들의 처우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. 상술한 연유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오스트리아 [[여권]]을 들고 미국, 캐나다으로 이민 정착한 인구는 대개 [[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]]의 [[폴란드인]]과 [[우크라이나인]][* 오스트리아-헝가리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폴란드인들을 피해 일부러 [[캐나다]]로 이민하는 편이었다.], 보헤미아의 [[체코인]] 및 헝가리 유대인이었다. 오스트리아인들의 미국으로의 첫 이주는 아마도 1734년 오스트리아 [[잘츠부르크]]의 50 가족이 당시 [[13개 식민지]]로서 새로 설립된 [[조지아주|조지아]]로 이주했을 때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. [[개신교]] 배경을 가진 그들은 [[가톨릭]]의 탄압 때문에 이주하였다. 물론 종교 문제로 미국으로 이주하는 오스트리아 국민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독일인보다는 체코인, 폴란드인, 실레시아인 같은 [[소수민족]]들이 훨씬 더 많았다. 19세기 중반에는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에서 농노 해방이 이루어지며 농민들의 이주가 자유로워진 것을 계기로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 각지의 피지배 소수민족들이 미국 각지로 이민하기 시작했다. || [[파일:Hutterite_migrations_in_Europe.png|width=100%]] || ||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일대를 중심으로 했던 [[재침례파]]의 분파 후터파는 [[보헤미아]], [[트란실바니아]]를 거쳐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해당하는 흑해 북부에 주로 정착했었다. || 오스트리아, 스위스에서 러시아 제국령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독일계 주민 중에 미국으로 재이민한 경우도 많았다. 이들은 대개 [[종교의 자유]]를 찾아 러시아 제국의 독빠 [[예카테리나 대제]]의 초청받아 이민한 경우였는데, 예카테리나 사후 독일계 이주민들이 대한 종교의 자유가 제한당하고 병역이 부과되자 상당수는 미국이나 [[캐나다]]로 재이민하였다. [[사우스다코타주]]의 대표 요리이자 [[샤슬릭]]을 모방한 바비큐의 일종 시슬릭(Chislic)은 [[크림 반도]]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요한 호에워스(John Hoellwarth)라는 오스트리아계 성씨를 가진 사람이 보급한 요리라고 한다. 1938년에는 [[나치 독일]]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것을 계기로 29,000여 명의 [[유대인]]들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. 현대에도 오스트리아에서 미국으로 이민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인 사례로 아메리칸 드림 성공의 레전드 중 하나로 꼽히는 [[아놀드 슈워제네거]]가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